한국 현악기(바이올린) 시장에 대한 생각

일반적인 현악기(바이올린) 전문점의 경우 취급하는 악기는 크게 전문 현악기 제작가가 만든 악기와 대량 생산된 악기의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문 현악기 제작가가 만든 악기에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네리 같은 올드 악기부터 현대 악기까지 일반적으로 고가에 거래되는 악기들이 포함된다. 대량 생산되는 악기는 말 그대로 공장이나 공방 등에서 교육용으로 대량 생산하는 악기를 이야기한다. 이 두 가지는 가격의 차이로 구분을 쉽게 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경우에는 악기 시장이 형성될 때 이미 현악기 제작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현악기 전문점에는 올드 악기부터 새 악기까지 다양한 전문 제작가의 악기를 구비하고 있다. 물론 악기점에 따라 고가의 악기들이 없는 상점들도 많고 교육용 악기만을 취급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에는 악기 시장이 형성되던 시기에 전문 현악기 제작가가 없었기 때문에 원활한 악기 판매를 위해서는 새 악기가 있어야 할 가격대를 채울 악기가 필요했고 결국 그 위치를 정체불명의 올드라고 불리는 악기들이 차지하는 구조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자리를 빼앗긴 새 악기는 국내 전문 현악기 제작가의 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현재에도 그 자리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현악기 시장에도 새 악기들의 판매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현악기 전문점의 경우 대부분 외국 제작가가 만든 것들을 취급하고 있으며 국내 제작가의 악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내 전문 현악기 제작가들의 경우 자신이 만든 악기를 직접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장 형성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국 현악기 제작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문 현악기 제작가를 기준으로 볼 때 시카고 바이올린 제작학교의 설립자인 이주호 씨가 바이올린 제작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고 현악기 제작가가 된 최초의 한국인이다. 이후 이주호씨가 설립한 시카고 바이올린 제작학교(Chicago school of violin making, USA) 출신의 한국 제작가들이 들어와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악기 전문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이후 현재 국내에는 미국을 포함 이태리, 독일, 영국 등의 유명 바이올린 제작학교 출신 제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에는 대부분의 제작학교 졸업생들이 악기 제작보다는 악기 수리와 판매 쪽의 업무를 주로 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국 제작가들의 악기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최근에 와서야 악기 제작을 하는 전문 제작가의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제작가의 수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하여 제작 악기의 수준도 발전하여 현재 한국 제작가들의 악기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지만 이런 한국 제작가들의 악기를 연주자들이 경험할 기회가 적어 제대로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외국의 경우 다양한 실험이나 블라인드 테스트 등을 통해 소리로 악기를 구분하기 어렵거나 오히려 새 악기의 소리를 더 좋게 느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국내에서는 ‘악기는 100년은 지나야 소리가 잘 난다.’, ‘새 악기는 소리 내기 힘들다.’ 등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악기 시장에 통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 올드 악기(3대)와 새 악기(제작가 4명)를 비교하는 블라인드 테스트가 열렸다. 코로나로 인해 테스트 악기를 연주한 연주자를 제외한 5명의 연주자가 악기의 소리를 평가하는 비공개 테스트였는데 이 테스트 결과 역시 외국의 테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블라인드 테스트 정리 자료>

이런 결과를 보면 앞으로 한국 제작가들의 악기 판매가 이루어지는 제대로 된 시장이 형성되고 연주자들이 한국 제작가의 악기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많은 연주자가 한국 제작가들의 악기를 선호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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