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현악기 마이스터들의 악기 집중탐구 6

(스트링앤보우,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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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 김태석

김태석의 공방에 들어서면 다른 악기 공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수많은 음반들과 커다란 스피커와 모니터가 눈에 띈다. 김태석은 악기뿐만 아니라 음악 자체에도 관심이 많다. 때문에 음향시설과 모니터를 통해 시간이 날 때마다 음악 감상을 즐긴다고 한다. 또, 그의 공방 한 켠은 카메라 장비들이 즐비하다. 자신의 악기를 직접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렇게 진정으로 악기와 음악을 사랑하며 즐기는 마이스터 김태석, 그를 만나본다.

김태석은 모니터와 음향장비를 통해 베를린필 등 해외의 유명 연주자나 단체의 공연을 관람하며 음악 감상은 물론 악기의 최신 트렌드 등을 파악하기도 한다.

공방에 들어서자마자 특이한 냄새가 난다. 무슨 냄새인가.
아마도 나무 냄새이지 싶다. 바니쉬 냄새도 약간 섞였을 것이다. 이공간에 오래 머물다 보니 익숙해서 그런지 나는 잘 느끼지 못한다.

‘킴스 스트링스’에 대해 소개를 해달라.
나는 이곳에서 20년째 ‘킴스 스트링스’를 운영해오고 있다. 우리는 악기 제작도 하지만 악기 수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공방을 지향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악기 공방과는 달리 악기의 부속품이나 액세서리 등을 일체 판매하지 않고 있다.

최근 현악기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바빴을 것 같다.
그렇다. MVAK의 주요 운영진이 되어 전시회를 준비하고 운영하다보니 상당히 바빴다. 내가 제작한 악기를 전시 하는 것은 물론, 장소 대관부터 모든 것을 직접 처리해야만 했다. 그래도 지난 1회 전시회 때는 전시장이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수시대관으로 정해지는 바람에 급하게 준비했어야 했는데, 올해 전시회는 정시 대관이 되어서 더 꼼꼼히 준비할 수 있었다. 덕분에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악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연주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전시회에 좋은 반응을 보여주었고, 우리 협회의 내부적인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악기 제작가로서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무엇을 반성했나.
나는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악기제작가들이 설 수 있는 시장이 없다고 불평해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해 깨 달았다. 사실은 시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장을 개척하지 않고 있었던 것을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 시장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쓸 계획이다. 악기도 더 많이 만들고 협회 활동도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악기 제작학교 재학 당시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나는 1992년도에 시카고 악기 제작학교에 입학했다. 시카고 제작학교는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학교였다. 학생이 30명에 불과했다. 재학 당시를 돌이켜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더 많은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입학 후 6개월 만에 견습생으로 실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덕분에 나는 동기들보다 더욱 많은 것을 일찍이 배울 수 있었다. 3학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운이 좋게도 스위스로 연수를 다녀올 수 있는 기회까지 생겼다. 연수를 다녀온 이후에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셨던 이주호 선생님 아래서 어시스턴트를 지내기도 했다. 선생님의 문하에 있으면서 굉장히 많은 것들을 배웠다. 1995년, 졸업 즈음에 학교 측에 서 내게 1년만 더 학교에서 일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래서 나는 졸업 이후에도 학교에서 일하며 1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에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학업과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느라 많이 바빴겠다.
그렇다. 정말 치열하고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뜻밖의 행운들이 따라주어서 동기들에 비해서 일찍 실무경험을 쌓았고 이를 발판삼아 더 다양한 경험에 도전 할 수 있었다. 특히 앞서 밝힌 것처럼 이주호 선생님 밑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도제식으로 악기 제작을 배운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악기를 제작 할 때에는 가장 좋은 재료와 좋은 나무를 쓰라”는 것이다. 물론 제작가라면 자신의 악기가 최상 의 질을 갖추도록 애쓰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의 이 말씀 속에는 악기 제작에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그 악기에서 결함이 발견되어도 재료 탓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재료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늘 내 실력을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나는 이주호 선생님의 이 말씀을 깊이 새기고 항상 따르고 있다.

그동안 악기 제작보다는 수리에 더 치중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시카고 악기 제작학교 재학 당시부터 악기 수리를 더 많이 해왔다. 나는 ‘악기 제작가’는 악기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수입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어야 진정한 악기 제작가라고 생각한다. 악기를 제작하기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악기 제작가라고 부르는 것 또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악기란 모름지기 누군가 연주를 해줘야지만 생명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내가 제작한 악기는 아마추어 연주자보다는 전문 연주자에게 파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내 악기가 끊임없이 연주되며 ‘연속성’을 가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악기 제작가들이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악기 수리의 경우에는 수리를 마친 후에 바로 수입이 생기지만 악기 제작의 경우에는 악기가 완성되어도 누군가에게 판매해야만 수입이 생긴다-악기 제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도 이런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악기 수리를 많이 하면서 악기 제작에 좋은 공부를 하 고 있기도 하다. 좋은 악기들을 직접 수리하면서 악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다. 또한 연주자들과 악기와의 관계도 많이 파악하게 됐다.

그렇다면 악기를 제작할 때 에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가.
그동안은 ‘내가 만들어보고 싶은 악기’를 제작하는 데 치중했다면 이제는 연주자에게 맞춰서 악기를 제작하려고 한다. 1mm라는 치수는 그다지 커보이지 않지만 연주자들은 악기에서 이런 미세한 치수 변화로도 아주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배웠던 치수에 엄격히 맞춰 악기를 제작했지만 이제는 기본 치수의 범위 내에서 연주자가 가장 편하게 느낄 치수를 찾아 제작하고 있다. 수리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악기 제작이나 악기 수리 시, 마무리 전에 꼭 연주자에게 공방에 방문해 직접 악기를 잡아보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 의미 있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악기 제작과 수리는 사람(제작가)에서 사람(연주자)으로 이어지는 작업이다. 연주자와 제작가 개개인이 모두 다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늘 변수가 있다. 이런 점이 악기 제작가라는 직업을 가장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점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만들었던 악기들이 세세하게 기억이 나는가.
아마 지금까지 30대 정도의 악기를 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제작했던 악기에 대해 기억을 잘하지 못하 는 편이다. 물론, 악기를 보면 그것이 내가 제작한 악기라는 것을 알아보겠지만 언제, 어떤 악기를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악기란 결국 연주자의 손에 들어가 연주가 되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만든 악기를 되도록 소장하지도 않고 연주자들에게 떠나보내려고 애쓴다. 나는 이렇게 떠나보낸 악기들을 머리 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기억한다. 악기를 제작하면서 나는 그 악기에 대해(치수, 재료의 특징 등) 노트를 해놓는다.

이 노트는 다음 악기제작에 참고 자료가 되곤 한다. 나의 가장 소중한 데이터베이스인 셈이다. 이 데이터를 통해 나는 계속해서 더 나은 악기를 만들어왔고, 다음에 제작할 악기는 더 완성도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마이스터 김태석

•1995 시카고 바이올린 제작학교(Chicago School of Violin Making, USA) 졸업.

<경력>
•1993년 Meister John Eric Traelnes (Lausanne, Swiss) 에 게 악기 수리 연수.
•1993~1996 시카고 바이올린 제작학교 (CSVM) 교장 Meister Tschu Lee(이주호)의 조수로 활동.
•1994~1996 Austin’s Violin Shop (Illinois, USA)에서 수리책임자로 근무.
•1994~1996 시카고 바이올린 제작학교(Chicago School of Violin Making, USA) 근무.
•1996~ 현재 킴스 스트링스 대표.
•2011~ 현재 한국마에스트로바이올린제작가협회 운영위원

요즘 연주자들은 악기에 대해 잘 아는가.
물론이다. 연주자들이 악기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는 오해는 금물이다. 연주자들은 악기를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안다. 그들은 악기 제작가들이 칭하는 객관적인 악기 명칭을 모를 뿐이다. 현악기들이 아무래도 서양악기다보니 악기 명칭이 모두 외국어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연주자들이 악기 용어에 대해 많이 생소함을 느꼈겠지만 요즘은 악기 용어를 잘 아는 연주자도 많다. 용어를 정확하게 알면 악기의 제작이나 수리를 담당하는 사람과도 정확한 소통이 가능하니 악기와 연주자 자신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아직 악기 용어 등에 대해 잘 모르는 연주자도 물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악기 자체에만 관련된 자료들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트링앤보우>와 같은 잡지에는 악기관련 기사들이 자주 실리곤 하니, 연주자들에게 그런 악기 관련 기사들에 관심을 갖고 많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가.
앞서 언급했듯, 최근에 현악기 전시회를 마치면서 앞으로 악기 제작에 시간을 더 투자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1년에 2대 정도의 악기를 제작했다면 올해에는 5대 정도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상반기에 2 대의 악기를 완성했다. 악기 제작가들의 시장을 개척해 대한민국의 악기 시장을 더욱 활성화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와 뜻을 같이하는 제작가들이 많기에 악기 시장의 미래는 더 밝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글-심세나 기자/ 사진-임성본 기자

마이스터 김태석의 악기 제작 과정

마이스터 김태석이 악기 제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정들을 직접 소개한다.
아래의 모든 악기 사진들은 김태석이 지금까지 악기를 제작해오며 직접 찍은 사진임을 밝힌다.

악기 제작 과정 1,2
악기의 옆판을 만드는 과정(rib assembly). 옆판을 기준으로 앞판과 뒷판을 작업한다. 옆판의 완성도에따라 이후 의 작업 과정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악기 제작시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작업이다. 만들어진 옆판을 커다란 종이 위에 놓고 외곽을 따라 선을 그린 다음 뒤집어서 앞편과 뒷면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악기 제작 과정 3,4
앞판과 뒤판의 아치(arch)를 만들기 위해 둥근끌(gouge)로 나무를 깎는 모습.

악기 제작 과정 5,6
둥근끌로 나무를 거칠게 깎은 후에는 손가락 대패(finger plane) 등의 도구를 사용해서 모양을 만들어 간다. 사진 에서 보이는 것처럼 등고선을 이용하면 손쉽게 좌우 대칭을 만들 수 있다. 제작가마다 이 작업에 대한 생각이 다른 데, 개인적으로는 악기의 외형을 다듬을 때는 먼저 완성했을 때의 두께를 예상해서 바깥쪽의 모양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야 진동을 위한 판의 구조를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작업을 위해 악기의 외부 치수 에 대한 기록과 두께에 대한 기록을 항상 남겨놓는다.

악기 제작 과정 7,8
악기 안쪽을 깎는 모습. 악기 바깥쪽을 기준으로 두께를 측정하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미리 이런 점을 계산하여 바깥쪽의 모양을 만들면 작업이 쉬워진다. 악기를 제작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마지막 셋업(set-up) 작업이다. 개인적으로 정직하게 만들어진 모든 악기는 좋은 소리가 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연주자가 느끼게 하려면 연주자가 그 악기를 사용할 때 연주하기 쉽고 편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 것 이 악기의 셋업(set-up)이다. 연주자에 따라 악기 연주시 편안하다고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다양한 부분에서 생기기 때문에 각각의 연주자에 맞추어 주도록 신경 쓴다.

김태석의 레이블

악기의 안쪽에 붙이는 레이블(label). 흔히 사용되는 인쇄된 레이블이 아닌 동양적인 느낌이 나는 전각을 사용하고 있다. 사용하고 있는 전각은 고암 정병례 선생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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